인천시 옹진군 영흥(도)면에는 국사봉(해발 123m)이라는 영흥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다. 그 정상 전망대에 올라서면 팔미도 등대와 인천대교, 인천항이 바라다 보이고 맑은 날에는 멀리 강화도 마니산과 백령도와 항해도 해주의 수양산까지 보이는 영흥도의 명산이다. 국사봉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면 고려 말 이성계의 세력에 몰려 영흥도로 피신해 은거하던 왕족 익령군 왕기(王琦)가 국사봉을 지나다가 발견한 작은 옹달샘의 물맛이 좋아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우물을 팠으나 물줄기가 끊어지고 콩가루 같은 흙이 나오자 범상치 않음을 알고 다시 묻은 후 매일 샘물에 목욕재계한 후, 국사봉에 올라 북쪽 왕도를 바라보면서 나라의 안위와 환향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푸른 서해바다 위에 촘촘히 들어서있는 섬들과 인천을 바라다볼 수 있는 넓은 조망권을 자랑하는 국사봉은 언제나 등산객과 산악자전거 동호회 등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 외에도 국사봉에는 이색적인 절이 있어 산을 오르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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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 전경 |
1.4후퇴 당시 학도병분대장으로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싸우다 고인이 된 남편의 넋을 기리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통일사이다. 무더위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오후, 가을을 재촉하는 산매미소리가 통일사로 향하는 길목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햇빛을 가려주는 고마운 숲길을 따라 국사봉 중턱까지 이르는 동안 국사봉에서 시작된 작은 계곡의 물소리와 산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흙내음, 숲속향기에 도취되어 한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눈앞에 통일사가 서있다. 사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올 만큼 고즈넉하고 조용하다. 사찰입구에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한 분과 신도 몇 분이 입담을 나누다 갑자기 등장한 필자를Q 보고 스스럼없이 "커피 한 잔 하고 가세요"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한 잔의 커피를 대접받으며 인사를 나누면서 통일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 을 수 있었다. |
옛 대웅전 입구에 태극기 액자가 걸려있다 |
황해도 해주 출신인Q 최명주(본명 최선규 89세)스님은 6.25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전해 적군과 맞서던 남편 서평석씨가 1.4 후 퇴 때 해주의 섬막이라는 곳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에 포위되어 분대원이 모두 전사하자 자신은 벼랑 끝으로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고 한다. 남편을 잃은 노스님은 아들과 함께 남하해 지인의 소개로 영흥도에 정착한 후, 남편의 넋과 조국통일을 기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지금의 국사봉 밑자락에 통일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그것이 40여 전의 일이다. 절을 짓는다는 것이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창건당시 개인 사찰로는 건축허가가 나지 않아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의 절로 승인받아 통일사를 세울 수 있었고, 기독교인이 많은 영흥도 땅에서 절을 짓겠다고 했을 때 선뜻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맨발로 산 아래에서 골재를 이어 날랐다고 한다. "그래서 억척 맞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셨다." 다행히 동네 분들 중 목수가 있어 그분의 도움으로 절을 지었다고 한다. |
대웅전 모습- 앞쪽 옛 대웅전, 뒤쪽 현 대웅전 |
대웅전안의 기도문에 '남북통일발원' '대한민국대통령'을 위한 글귀가 쓰여 있다. 이는 이 절의 특색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옛 대웅전의 태극기 액자와 절 입구에 태극기를 왜 달아 놓았는가? 란 물음에 절을 세운 목적을 잊고 싶지 않아 걸게 되었고, 누구나 이곳에 오면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갖자는 뜻에서 걸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인이 된 남편의 넋과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발원(發願-부처나 보살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뜻함)을 드리기 시작 한 후,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찾아와 고향 앞 바다를 바라보며 생전에 고향땅을 밟을 수 있기를 기원하기도 하고 이 절에서 발원을 하면 얽힌 것도 풀린다는 입소문에 8도에서 신자들이 찾아들고 있다. |
약수터 |
통일사 작은 법당 뒤에는 옻나무 군락지가 있는데 옻나무 밑에서 나오는 물은 만병통치라고 하여 귀히 여겼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른 적이 없었다는 이 약수터는 최근에 물맛이 좋고 소화가 잘된다는 소문에 찾는 이들이 많아 계속 보존될 수 있도록 시설을 보수 정비하여 국사봉을 오르는 사람들의 갈증을 달래주는 약수로 인기가 높다. |
최명주 스님 |
이제 90살을 바라보는 노스님(최명주 89). 절 입구에서 환한 미소로 맞아 주셨던 그 할머니가 이절의 주지라는 것을 알고 사진촬영을 요청했지만 끝내 거절을 하셨다. 하지만 신도님들의 도움으로 미리 찍어놓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작은 체구에 굵고 깊게 패인 주름마저도 아름다운 여인, 노스님이다. 40여 년을 국사봉 산기슭에서 조국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과 수많은 학도병, 그리고 군인들을 위한 넋을 기리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고 6.25와 같은 민족상잔의 비극이 다시 도래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비는 노스님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가 싶다. 통일사! 전국의 유명 사찰과 절처럼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찾는 불자가 많은 곳도 아니다. 그러나 다른 절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나라사랑과 평화통일 정신이 깃들어 있는 이색적인 절이기에 영흥도(면)에 오면 꼭 한 번 들러 보기를 추천해 본다. 찾아가는 길 영흥면 내6리 장경리 해수욕장 100M 전방에서 우회전(이정표 있음)해 국사봉을 향해 700M 정도 가면 통일사에 도착 할 수 있다. 전화 : 032)886-7529 |